어느날, 나는 내가 꺼내어져 있음을 알았다.

강은교 시인이 말했다.
"70이 된 어느 날 문득 나는 내가 꺼내어 져있음을 느꼈어, 70년을 살고나 서야
내가 나를 꺼냈어."

사람들은 대부분 다 틀 속에서 산다.
달팽이처럼 커다란 자기 집을 머리에 이고 산다. 그 틀은 자기를 위해 스스로 만든 자기 프레임이다.

내가 그 틀에서 꺼내어 졌을 때 나는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된다.
강은교 시인은 나이 70에 또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에 결론은 없어, 따라서 나의 인생은 늘 가능성을 가지고 살고 있지”

사람들은 결론을 좋아한다. 그래서 “결론부터 말해” 라고 한다.
과정보다는 성급하게 답을 찾으려고 한다.
사업과 사건의 문제 해결을 위해선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다르다
“끝난 것이 끝난 것 아니다”라고 하는 말처럼 인생살이는 살아있는 날까지
결론이 없는 것이다.

그 인생은 사는 그날까지 업그레이드되는 것이다. 계단을 오르는 것이다.
어제보다 오늘이 향상되는 것이다. 이제는 인생 내리막길이야. 라고, 말하지 마라!
성서는 말한다. ‘참된 구원의 모습은 하늘나라에 오르는 그날까지 날마다 성화되어가는 것이라고,

업그레이드는 자기인식 속에서 나온다.
끊임없이 자라야 한다. 자기성장이다.
자기성장이란 거기에 없는 것을 느끼고 그곳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거기에 이르는 길이다.
톨스토이는 부활에서 주인공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려내려고 했다.
성장은 끌어내어, 꺼내놓기로부터 시작된다. 거기에 성장이 있고 업그레이드가 있다.

공간정리의 성공은 꺼내놓는 것에서 시작한다.
감추면 숨겨질 뿐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또 들어나게 된다.

삶의 정리도 나를 꺼내놓고 가능성으로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능성은 나를 행동하게 한다. 꿈을 꾸게 하고 꿈을 이루게 한다.
나는 결론이 아니고 가능성이라고 마지막 벨트를 하는 70대의 시인,
강은교 시인은 쇼팽의 녹턴 같은 아름다운 음악의 연가를 쓰고 싶다고 했다.
음악과 시의 접목을 시도 한다. 그 힘이 가능성이다.
공간 큐레이팅은 늘 가능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