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라이터』 그늘이 있는 쉼의 공간

벼르고 벼르던 영화를 봤다.
무겁게 시작해서 무겁게 가라앉았다
엔딩 음악은 모든 것을 가라앉게 만드는 어둠이었다. 그리고 자막이 올라오면서
달빛이 흘러들었다. 흔들리는 물결을 따라 조금씩 빛으로 살아났다.
삶은 늘 어둠일 수만은 없다. 어둡지만 그래도 빛은 있었다.
달빛은 보름달 빛처럼 환하지는 않아도
뒤돌아 살아온 내 그림자는 볼 수 있었다.

"평생 나를 어루만져준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너 뿐이었어."
"네가 있어야 할 자리는 네가 결정하는 거야,
"누구의 말을 듣고 결정하는 게 아니란다."
미국 흑인들의 인생살이는, 그리고 그 들의 세상은 늘 달빛 인생인지 모른다.
그러나 빛은 늘 가야할 길을 비춰주고 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보이도록 빛은 다가온다.
달빛은 빛이지만 그늘의 분위기를 늘 품고 있다.

김지하 시인은 '그늘' 에 대한 의미를 인생의 삶에 비유하여 설명했다.
그늘을 모르면 시를 쓸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다.
화두를 던져놓고 답을 찾으라고 했다.
뭘까, 그 깊은 의미는 한마디로 정리 할 수 없지만,
의미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에 대한 성찰하는 힘이되었다.

고단한 인생길에 쉼의 공간은 그늘인지도 모르겠다.
나무그늘 아래는 늘 쉼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가?

은은한 달빛이 스며드는 공간을 만들어보자!
고단하고 실타래처럼 얽혀버린 복잡한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편히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
공간정리는 쉼이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빛이 들어오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연민과 우수에 젖은 '샤이론'의 검은 얼굴에 흐른 던 달빛 머금은 그 눈빛은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아카데미 작품상은 늘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감동이 있어 좋다.
쉼은 그늘이다. 그늘은 쉼이 있는 공간이다. 그 공간은 늘 우리 곁에 있으나
우린 공간을 잊고 산다. 쉼을 잊고 산다.
밝을 明자는 日(해)와 月(달)을 함께 붙여 놓은 것이다. 빛과 그늘이 그 역할을 다할 때 진정한 밝은 세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늘이 있는 쉼은 삶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