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정리는 삶의 지도그리기

길을 잘 찾지 못하는 사람을 길치라고 한다, 나는 길치다. 늘 알던 길만 고집하고 간다.
새로운 지름길이 생겨도 늘 다니던 길만 간다.
골목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으면 한번 갔던 길을 한 번에 되돌아오는 것을 힘들어 한다.
공간지각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뇌 과학을 연구하는 정재선 박사는
‘길을 잃고 헤매고 나서야 비로소 지도를 그릴 수 있었다.’고 경험담을 말했다.
사람들은 왜 길을 잃을까? 지도를 그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도를 그리는 것은 머릿속에다 기억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중요한 갈림길의 간판, 건물의 모양 등을 그려 넣는다.

인생의 길도 비슷하다. 정해진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살다가,
그 목표의 지향점이 흐려지면 어디로 가야하는지 길을 잃게 되는 것이다.
방향성을 잊었기 때문이다.
인문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삶은 '목표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고 했다.
목표는 소유의 이미지가 강하다. 결과 지향적이다. 실패와 성공에 따라 삶의 희비가 결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방향은 가치적인 요소가 강하며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게 다가온다.
목표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주변의 풍경을 못 보게 하는 원인일 수 있다.
어느 노 시인은
“산을 오를 때 보이지 않던 꽃
내려올 때 보인다.” 고 했다.
갈 때는 보이지 않았던 주변의 풍경을 보게 되고, 지나온 길도 되돌아 확인하게 되고,
앞으로 가야할 길을 찾게 되면서 삶의 지도를 그리게 되는 것이리라.

정리수납 서비스 실습을 했던 기억이 난다. 주방과 냉장고 등 물건이 엄청나게 많았다.
거실에 가득 쌓여있는 다양한 물건들을 보면서 인간이 만들어내는 상품들이
참으로 다양하고 엄청나게 많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물건이 많을 줄은 몰랐어요.” 라고 주인이 말한다.
쇼핑의 즐거움과 소유의 만족감, 새로운 물건에 대한 호기심과 필요성 등으로 집집만다 물건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물건들로 인해 길을 잊어버렸다. 물건이 삶의 동선을 흩어 간다.
삶의 환경이 바뀌고 생활도구들이 진화하면서 물건들의 쓰임새도 달라진다.
물건들은 이미 생존의 도구에서 개인의 취향과 변화되는 트렌트의 요구를 채워주는 도구로 바뀌었으며,
앞으로도 이런 경향은 지속 될 것이다.

공간정리 큐레이팅은 그 수많은 물건으로 인해 잃어버린 주거 활동의 길을 찾고 지도를 그리는 일이다.
물건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길을 그리는 일을 하고나면 흩어간 동선이 다시 돌아온다.
길에서면 물건들이 보이고 가려진 공간이 보이고,
깨끗하게 정돈된 공간으로 환하게 들어오는 아침 햇살에 뿌듯한 미소를 볼 수 있을 것이다.